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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스타디움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나에게 시간은 많았다. 해인사까지 가는 버스시간까지 대구를 조금더 둘러보기로 작정하고, 전날 계획했던 골목길 투어를 떠나기로 결심했다.1박2일에서 나왔던 것 같은데....하며 출발했지만 예상 외로 목적지가 꽤 중심가 쪽이어서 놀랐고; 여행 막바지여서 그런지 어쩌면 별거 아니었던 이곳이 꽤 기억에 남는다.

대구 '근대로의 여행'표지판. 말그대로 ~로를 사용한 근대로 와 근대로(길)이라는 중의적 표현을 담고있는 듯 한데, 누가 만들었는지 참 잘만들어졌다는 생각이든다. 더불어서 저 위의 근대신사 역시 센스만점!!!


내가 근대로의 여행을 시작한 지점은 이상화,서상돈 고택부터인데, 그렇기에 들렸던 관광안내소에서 또 이렇게 도장을 쾅쾅 찍어주신다! 이때는 짐을 두고와서 여행노트에 찍지 못하고 아쉬운대로 팜플렛받아서 찍었다 히히:)


사실 서상돈 고택은 별로 볼게 없었고^^; 이상화고택은 좁았지만 여기저기 쓰여있는 이상화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아 맞다 이거 국어시간에 봤었지!'싶어서 인지 여기저기 더 열심히 들여다 봤다.

이상화 시인의 가장 유명한 시들은 이렇게 석판으로 제작되어 전시되어있다. 하지만 역시 이상화 시인의 가장 유명한 시는 바로 이 시가 아닐까. 아마 여기까지 읽으면서도 '이상화가 누구야?'하실 분들도 다 알만한 이 시! 바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쁜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찐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쌈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우스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띄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명이 지폈나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지금 읽어도 마음 속에서 무언가 끓어오르는 느낌이 드는 시인데, 그 당시에는 오죽했을까.


이상화,서상돈 고택을 지나 계산성당으로 가는길엔 이렇게 그의 벽화가 그려져있다. 이렇게 실제로 와서 느끼는 것이 중,고등학교때 이시의 시대적배경, 시적효과를 칠판으로 배우던것보다 훨씬 낫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그랬으니까.


계산성당으로 가는길, 대로변엔 계산성당과 대구의 근대 독립운동가들의 초상화들로 꾸며져있다.


비록 나는 불교신자지만, 우연치도않게 여행의 시작인 전주에서도, 그리고 마지막여행지라고도 말할 수 있는 대구에서도 성당을 들린다는게 조금 재밌기도 하다. 전주의 정동성당이 순교자때문에 유명한데 반해 계산성당이 유명한 이유는 순교자때문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현대식 성당건물이라는데 있을 것이다.


갔던 날짜는 금요일인데 미사가 준비중인 것 같았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들어오고, 또 옆에 있는 고해성사방으로도 사람이 계속해서 들락날락거리고 수녀님들도 왔다갔다하고. 그래서 사진을 찍기에 참 엄숙한 분위기였다. 그냥 나도 저 뒤편 어딘가 앉아서 다른 사람들처럼 기도를 드려보기로했다.

그리고 이 순간이 어쩌면 이번 여행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필요했던 순간인 것 같다. 이 순간 만큼은 하느님에게 기도를 드려보았다. 제발 이순간이 끝나지 않게 해달라고. 지난 5일간의 여행동안 진정으로 행복했었노라고. 눈물이 흐르더라. 그때 흐르던 눈물은 순전히 '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진 않아요'라는 징징거림이었지. 여전히 이순간은 잊혀지지가 않는다. 다시 계산성당에 들리면 이때의 기분이 또 기억나겠지.

이렇게 여행지는 개개인에게 특별해지나보다.
별거 없다고 생각했던 계산성당이 내게 특별해 졌던 것 처럼.


눈물을 닦고(...) 계산성당에서 제일교회를 지나 선교사 주택쪽으로 올라왔다. 중간에 90계단이 있어야하는데...찾지못해서 패스. 선교사 주택은 한곳에 몰려있는데 기와지붕을 쓴 현대식축물이라니! 뭔가 새롭다.


세건물은 모두 지금 각각 박물관으로 쓰인다고 하는데, 내가 갔을때는 왠일인지 다 굳게 닫혀있었다 ㅠㅠ 나와 같은 시간에 이곳에서 가이드선생님의 설명을 듣던 아이들의 강의를 훔쳐들으며 나도 천천히 살펴본다.


이 길을 따라 걷다가 보면 죽어야 했던 선교사들과 그 가족들의 무덤이 있다. 나도 모르게 성당에서처럼 엄숙해져서 목례도 했는데...그 엄숙함과 미안함때문에 무덤을 사진찍지는 못하겠더라.

가이드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이 건물의 의의는 물론이요 숨겨진 것들까지 꼼꼼하게 설명해 주시는데 나는 그저 도강생이라(...) 대충 흘려들었다.


원래는 여기가 골목투어 출발지라는데...도통 길을 찾기도어렵고, 안내책자에 있는 곳들을 다 살펴보지도 못했지만 슬슬 해인사행 버스를 타야할 것 같아서 내려가기로했다.


그도 그럴것이 분명 안내책자에는 이쯤이 3.1운동길이라고...하는데, 전혀 그래보이지가 않았다. 3.1운동 노래가 있는 현판이 있는걸 보니 맞는거 같다만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그 길이 그대로 보존되지는 못했다고...)


그래도 나름 그 정신을 계승하려는 벽화가있어 내 아쉬움을 달래본다. 그래, 그 옛날에 바로 여기에 3.1운동이 시작되었겠구나. 여기에서 우리 선조들은 '만세'를 외치고있었겠구나. 바로 이 아스팔트 밑의 땅에서 말이다. 지금은 동산병원의 차 진입로인듯 하다만.-_-;

조금은 아쉬움이 남았지만, 다시 지하철을 타고 터미널로가서 해인사로 떠나기 위해 돌아가는 길. 여행이 끝나가니까 남부지방의 날씨가 조금은 맑아진듯 보였다. 벌써 여행의 끝이 다가왔다니, 그저 아쉽기만 했다. 사진은 그냥 지하철 타러가다 예쁘게 꾸며놓은듯해서 한컷:)
겨우 6일간의 여행이었지만 길고도 길게 걸려 쓰고있는 여행기도 끝이 보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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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렌 (연예 칼럼니스트)

꿈꾸는 소녀의 주관적 리뷰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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