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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작가신경숙출판문학동네발매2010.05.19평점


어릴 적 영향으로, 엄마의 불평과 함께 신달자와 신경숙을 듣는 동시에 혼동한다. 누구에 대한 불평이었는지는 모호하지만 그들에게는 미안하게도 나는 두 작가의 이름을 모두 부정적인 이미지와 연결해왔다. 그나마 <엄마를 부탁해> 라는 소설로 전 세계를 뒤흔들며 신경숙의 이름이 더 대중적인 것이 된 지금. 한규 군의 선물 덕에 신경숙을 오랜만에 만났다. 그녀의 유명세가 지금만큼은 아니었던 때에, 또 내 마음의 깊이가 지금보다 훨씬 못 미치던 때에 만났던 것이 마지막이어서 어쩐지 설레기도 했다.

역시 실망스런 부분은 있다. 비슷한 연령대의 작가가 쏟아낸, 그들 나름대로는 쓰지 않고 배길 수가 없을 데모니 군대니 실종이니 하는 것들은 써야했겠지만 만나기로 한, 그러나 만나고 싶지는 않았던 사람을 만난 듯이 머쓱했다. 백 명 안아주기와 같은 설정은 어딘가 모난 데가 있었고, 콩닥거림은 주지만 좀 진부한 청춘의 대사도 꽤 있었다. 하지만 나의 실망이 모두의 실망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이런 요소들은 또 그만큼 공감하는 사람이 많을 테니 그녀의 작품을 대중적으로 만든 중요한 역할을 해주었을 것 같기는 하다. '실망스런 부분'이라고 말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든다.

사실 나는 '실망'한 부분을 말할 자격이 없을 지도 모르겠다. 장편 한 권을 읽는 내내 단의 외로움과 명서의 사려 깊음, 윤의 혼돈과 미루의 불안함, 그리고 윤교수의 고독이 느껴져 수 없이 울컥했으니 말이다. 이렇게나 마음을 빼앗기고 감히 실망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특히 단이는 가장 마음이 쓰였던 인물이고, 그만큼 윤의 상실감이 내 것인 양 아팠다. 이야기 속의 청춘은 내가 겪는 것이기도 하고 내가 동경한 것이기도 하다. 청춘은 시퍼런 멍이 하나쯤 있어야 비로소 청靑춘이지 않나 하는 생각에 일부러 내가 아픈 것을 반복해서 들여다 보고 생채기를 내다가, 너무 아파버려 절망감에 빠지곤 했다. 어떻게 일어서야 하나 감도 잡지 못한 채 또 다른 곳을 다치기를 반복하며 그 시절을 통과했다. 아니, 여전히 대학이라는 장소를 벗어났을 뿐 아픈 청춘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절뚝이며 터널을 지나고 있다. 인물들은 서로가 잃은 것들을 참 적절한 방식으로,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채워준다. 끝내 자신이 겪은 상실을 극복해내지 못하는 이도 있지만, 서로가 없었다면 더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청춘은 상실을 수반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을 감당해내는 것에도 차이가 있겠지. 그렇다고 해서 내버려두어도 되는 청춘과 보듬어주어야만 하는 청춘이 있는 건 아닐 것이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이 돼도, 아무도 나를 돕지 않는다고 생각이 돼도, 상실이 또 다른 상실을 보듬어야만 하는 것이 청춘인 것 같다. 하다 못해 자신의 것이 자신을 돌보더라도 말이다. 청춘은 어떻게든 살아야만 견뎌지고, 작가의 말처럼 '오래전' 이라는 아련한 말로 기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이해되는 것일 테니까.

살아보지 않은 앞날을 누가 예측할 수 있겠는가.

앞날은 밀려오고 우리는 기억을 품고 새로운 시간 속으로 나아갈 수 있을 뿐이다. 기억이란 제 스스로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는 속성까지 있다. 기억들이 불러일으킨 이미지가 우리 삶 속에 섞여 있는 것이지, 누군가의 기억이나 나의 기억을 실제 있었던 일로 기필코 믿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고 필요 이상으로 강조하면 나는 그 사람의 희망이 뒤섞여 있는 발언으로 받아들인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마음이 깃들어 있는 것으로. 그렇게 불완전한 게 기억이라 할지라도 어떤 기억 앞에서는 가만히 얼굴을 쓸어내리게 된다. 그 무엇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던 의식들이 그대로 되살아나는 기억일수록. 아침마다 눈을 뜨는 일이 왜 그렇게 힘겨웠는지,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일은 왜 그리 또 두려웠는지, 그런데도 어떻게 그 벽들을 뚫고 우리가 만날 수 있었는지. (20~21쪽)

서로에 대해 알게 되는 것, 비밀을 공유하는 것이 서로의 관계를 가깝게 해준다고 여겼던 적이 있었다. 가까워지기 위해서 내키지 않는 비밀을 털어놓은 적도. 혼자만 간직하고 있던, 말로 꺼내기 어려웠던 소중했던 비밀이 다음날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되어 다른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는 것을 알았을 때의 상실감. 누군가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일은 가까워지는 게 아니라 가난해지는 일일 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그때 했던 것도 같다.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일은 오히려 침묵 속의 공감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111~112쪽)

윤에게 그 시집을 사다주려고 어제 그 서점엘 찾아갔다. 서점 주인은 팔지 않는 시집이라고 했다. 삼십 년 전에 첫사랑이 선물로 준 자신의 소장본이라고. 매우 아쉬워하며 나오는데 서점 주인이 학생! 하고 나를 부르더니 첫사랑에게 받았다는 시집을 내주었다. 시집 값을 치르려고 하니 주인이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얼마를 주려고? 삼백오십원? 그럼 얼마를? 학생에게 주는 게 더 의미가 있을 것 같아. 나중에 학생만 지니고 있는 책을 원하는 사람이 있거든 학생도 그 사람에게 주도록! 다시 서점 안으로 발길을 돌리는 서점 주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윤교수님 말씀이 생각났다. 사람은 모두 다 자기 방식의 가치기준이 있다는. (183쪽)

나는 윤미루의 얼굴을 내 쪽으로 돌렸다.

― 우리 엄마는 나에게 누군가 미워지면 그 사람이 자는 모습을 보라고 했어. 하루를 보내고 자는 모습이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라고. 자는 모습을 보면 누구도 미워할 수 없게 된다고. 나는 화가 나거나 힘겨우면 일단 한숨 자는걸. 자고 나면 좀 누그러져 있지 않아? 사람은 자면서 새로 태어난다고 생각해봐. (195쪽)

가끔 그 신새벽에 그 빈집의 식탁 앞에서 했던 미루와의 약속이 생각날 때가 있다. 그런 날이 오겠지. 언젠가 말이야. 언젠가 우리가 다시 만나는 날 너희 셋이 쓴 문장들의 빈틈에 그림을 그려줄게. (239쪽)

산다는 것은 무無의 허공을 지나는 것이 아니라 무게와 부피와 질감을 지닌 실존하는 것들의 관계망을 지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살아 있는 것들이 끝없이 변하는 한 우리의 희망도 사그라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살아 있으라. 마지막 한 모금의 숨이 남아 있는 그 순간까지 이 세계 속에서 사랑하고 투쟁하고 분노하고 슬퍼하며 살아 있으라. (291쪽)

인간은 불완전해. 어떤 명언이나 교훈으로도 딱 떨어지지 않는 복잡한 존재지. 그때 나는 뭘 했던가? 하는 자책이 일생 동안 따라다닐걸세. 그림자처럼 말이네. 사랑한 것일수록 더 그럴 거야.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절망할 줄 모르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 다만…… 그 절망에 자네들 영혼이 훼손되지 않기만을 바라네. (341쪽)

어떤 시간을 두고 오래전, 이라고 말하고 있을 때면 어김없이 어딘가를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오래전, 이라고 쓸 수 있을 만큼 시간이 흐른 후에야 알게 되는 것들, 어쩌면 우리는 그런 것들로 이루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358쪽)

나도 모르게, 함께 있을 때면 매순간 오.늘.을.잊.지.말.자, 고 말하고 싶은 사람을 갖기를 바랍니다, 라는 말이 흘러 나왔다. 학생들이 와아, 하고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그리고…… 내 말이 끝난 줄 알았다가 다시 이어지자 학생들이 다시 귀를 기울였다. 여러분은 언제든 내.가.그.쪽.으.로.갈.게,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해요. (3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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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kkan (라이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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