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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장학회가 도마 위에 오른 건 오래 전부터다. 1962년 박정희가 당시 중앙정보부를 내세워 부산의 기업가 김지태로부터 부일장학회와 MBC, 부산일보 등을 강제 헌납 받아 만든 정수장학회가 사실상 딸 박근혜에게 상속된 것 아니냐는 게 논란의 요지였다.
PK 민심 변화와 맞물린 ‘정수장학회’와 ‘부산일보’ 사태
지난 2005년 10년간 맡아왔던 이사장직을 내놓은 후에도 정수장학회는 선거철만 되면 박근혜에게 부담으로 작용해 왔다. 그때마다 “이제 나와 정수장학회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말로 공격을 피해갔다.
하지만 최근 논란은 이전과 완연히 다르다. 얼마 전만해도 보수여당의 확고한 ‘텃밭’이었던 부산경남(PK) 지역의 민심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정수장학회의 지역적 연고인 부산 지역 민심이 새누리당과의 상당한 균열을 보이고 있고 그 자리에 ‘노풍’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설상가상 작년 말 터진 부산일보 사태가 박근혜에 대한 PK지역 민심을 악화시키고 있다. 지난해 11월 31일 부산일보 편집국은 정수장학회가 실질적으로 사회에 환원돼야 한다는 요지의 기사를 내보내려 했고 장학회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장은 윤전기를 스톱시켰다. 급기야 발행 중단 상황까지 맞게 돼 사태는 격앙되고 말았다.
‘실소유자는 박근혜’ 이게 부산 지역 정서
정수장학회의 실소유자가 박근혜이고, 부산일보 지분 100%를 장학회가 소유하고 있는 만큼 부산일보의 진짜 주인 역시 박근혜라는 게 부산 지역의 정서다. 그간 부산일보 노조는 정수장학회로부터 편집권 독립을 강력하게 요구해왔다.
야당의 공격도 예전과는 차원이 다르다. 문재인, 문성근, 김정길 등 PK지역 ‘노풍’의 선봉장들이 이번 총선을 모두 부산에서 치른다. 이들 ‘문성길 트리오’가 새누리당을 흔들기 위해 빼들 카드로 가장 효과적인 것이 바로 정수장학회다. 정수장학회는 박근혜가 아버지 박정희로부터 물려받은 ‘어두운 과거’이자, 아킬레스건이기 때문이다.
부산일보 노조와 지역 시민단체,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게다가 부산 현지에서 출마하는 야당 후보들까지 합세한 맹공이 시작되자 박근혜 측이 결국 손을 들려는 모양이다.
다급해진 박근혜와 친박, 정수 이사장 사퇴로 가닥?
<한국일보>는 오늘(23일) 박근혜 측근의 말을 빌어 ‘박 위원장이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 등이 스스로 물러나 주길 바라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박 위원장이 정수장학회가 100% 소유하고 있는 부산일보 지분도 내놓은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친박계 의원들도 “박 위원장이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박정희 대통령이 부일장학회를 헌납 받은 과정을 명쾌하게 설명하고, 사과할 부분이 있다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필립 이사장의 사퇴를 통해 정수장학회 논란을 잠재우고 부산일보 사태를 해결하겠다는 얘기다.
박근혜 측근조차 “박 위원장이 그렇게(최필립 사퇴)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최 이사장에게 사퇴를 유도해 그를 자리에서 밀어낼 수 있을까?
최필립의 입장을 먼저 살펴보자. 그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강경한 어조로 ‘절대 물러나지 않겠다’는 말을 여러 차례 해왔다.
최 필립 “절대 물러나지 않겠다”
지난 2월 3일 부산일보 사태와 정수장학회 논란에 대한 <한겨레> 기자의 질문에 최필립은 “내가 살아있는 한 이걸(정수장학회) 지켜줄 의무가 있다. 장학회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하는 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새누리당에도 박근혜가 정수장학회를 털고 가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최필립은 “정신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소리하는 사람은 한나라당(새누리당)을 나가야 한다”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최필립의 강경한 태도는 정수장학회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른 최근에도 변함이 없다. 2월 21일 언론과 만난 자리에서 자신과 이사진의 거취에 대해 “어떻게든 12월 19일(대선)까지 장학회를 지킬 것”이라며 “장학회가 정치적 쟁점으로 부각된 이상 그만두기 더 어렵게 됐다”고 잘라 말했다.
최필립은 단호하게 자리 유지를 선언했다. 반면 박근혜는 “나는 정수장학회와 전혀 무관하다”라고 말해 왔다. 이 말들을 조합해 보면 엄청난 ‘딜레마’가 그려진다. 박근혜가 진퇴양난에 처하고 말았다.
최필립 물러나도, 그냥 둬도...딜레마에 빠진 박근혜
최필립이 이사장에서 물러나게 되면 무언가의 강력한 힘이 그의 ‘의지’를 꺾었다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이는 곧 박근혜가 자신의 말과는 달리 여전히 정수장학회를 실질적으로 지배해 왔다는 결정적 증거가 된다.
반대로 최필립이 자신의 의지대로 대선까지 이사장직을 유지한다면, 최필립을 누를 수 있는 힘이 박근혜에게 없다는 게 입증된다고 볼 수 있어 “장학회와 무관하다”는 그간의 주장에 힘이 실리게 된다. 하지만 이 경우 정수장학회와 부산일보 문제를 그대로 둔 채 총선과 대선을 치를 수밖에 없어 박근혜에게 치명타일 수 있다.
최필립의 사퇴는 정수장학회 환원문제와 부산일보 사태의 해결로 이어져 선거에 나서는 박근혜의 행보를 다소 가볍게 해주겠지만, 그간 장학회와의 ‘무관함’을 주장해온 게 모두 ‘거짓말’이 되는 셈이어서 이로 인한 신뢰 실추는 곧 정치적 타격으로 돌아올 것이다.
최필립을 잔류시킨다면 ‘거짓말을 하지 않는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겠지만 정수장학회와 부산일보 문제를 그대로 둔 채 총선과 대선을 치를 수밖에 없어 박근혜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
아버지 박정희로부터 물려받은 ‘정당하지 못한 상속물’로 인해 박근혜가 엄청난 딜레마에 빠지고 말았다.
당장은 아닌 것 같아도 결국 사필규정으로 끝나는 게 세상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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